KFTC LIFE 1

코로나19부터 EBRD까지,
나의 영국일지

글/사진. 이병민 외환업무팀 팀장

2023년 3월, 3년 만에 회사에 돌아왔다. 그간 2달 동안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시대의 영국 생활은 어땠는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서는 무슨 일을 했었는지 등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여기에 모든 일을 다 적을 수는 없겠지만, 내 핸드폰 속 저장된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영국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Part 1.
Lock Down, 영국에서의 코로나19

  • 2020년 2월 말 즈음, 파견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코로나가 빠르게 퍼지는 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초, 영국 정부가 ‘락다운’을 시행했다.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재기’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대형마트에서는 방문 인원, 방문 시간, 구매 수량 등을 통제했다. 나는 이날도 오전 8시부터 장바구니를 들고나와 긴 줄을 서야만 했다. 아이들의 우유와 달걀은 이 시간을 놓치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내가 살던 영국 집 앞을 찍은 사진이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라스 하우스다. 각 집은 2층 또는 3층으로 되어 있고, 통상 1층이 거실이고 2층에 침실이 있다. 집과 집이 벽으로 붙어 있어 층간 소음 대신 벽간 소음 문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락다운으로 부동산사무소가 문을 닫았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 가족은 운 좋게도 집을 빨리 구한 편이었다. 물론 우리도 약 40일 동안 하숙집, 버짓 호텔, 에어비앤비 숙소를 거쳤지만 말이다. 후에 한인 교회에서 들은 얘기지만, 비슷한 시기에 온 다른 한국 분들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집을 못 구했다고 한다.

  • 영국의 초기 락다운 정책은 엄격한 편이라, 가족들은 외부 출입을 거의 하지 못한 채 거의 집 안에서만 6개월을 지냈다. 우리 집 뒷마당에 자주 찾아오던 반가운 손님, 멋진 다람쥐 ‘너티(Nutty)’를 운 좋게 순간 포착해 남긴 사진이다. 너티라는 이름은 다람쥐가 땅콩류(Nut)를 좋아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이날 이후 우리는 반가운 손님을 위한 아몬드와 브라질너트를 뒷마당에 매일 뿌려 두었다.

  • 다음은 외출이 제한된 일상에서 아이들이 즐겨 하던 뒷마당 공 던지기 체육 시간 장면이다. 집 뒷마당은 2평 남짓한 크기였지만 코로나19 시대의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공간이었다.

Part 2.
사진 속에 담긴 영국 일상

영국 서점에서 본 세계지도인데, 내가 늘 보았던 세계지도와 어쩐지 달라 눈길이 갔다. 쉽게 알아차렸겠지만, 지도의 중심에 영국 등 유럽지역이 있다는 것이 달랐다. 우리나라와 호주가 오른편에 있고 아메리카 대륙이 왼편에 있다.

내가 살았던 동네 근교에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이 예뻤던 킹스턴 브리지다.

집 근처 리치몬드 공원에 있는 웅장한 나무들도 멋졌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가 도미노처럼 눕혀져 있는 킹스턴 시내의 유명한 관광 명소도 있다. 이 모습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자주 찾아오곤 한다.

가끔 퇴근 후 맥주를 마시기 위해 간 영국 술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유럽 축구경기를 볼 수 있는 대형 TV들이 여러 개 있고, 앤티크 필이 충만한 바가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보통 바에서 생맥주를 받아 들고는 빈 테이블에 가서 안주를 주문할 수 있다. 여기서도 주문은 QR코드로 했다.

그리고 영국 음식하면 바로 떠오르는 피쉬 앤 칩스! 집 근처 서비튼역 앞에 있는 25년 전통의 맛집이다.

처음 갔을 땐 공사 중이었지만 다행히 귀국 전에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빅 벤

낮의 모습과 밤의 모습이 모두 매력적인 런던 아이. 난 타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

회사 가는 출근길 버스 안에서 찍은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베스트 샷 중 하나다.

템즈강에 크루즈가 지날 때면 아래 다리가 열리는 타워 브리지. 그때마다 다리 위 통행이 제한되어 주변 교통체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별도 입장권을 사면 탑 위에서 멋진 경관을 볼 수도 있다. 영국 사람들은 주로 다리 위 탑에 오르기보단 다리를 건너와 강변에서 경관을 보곤 한다.

Part 3.
EBRD, 맨땅에 헤딩!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는 여러 국가의 전/현직 정부 관료, 대학교수, 왕족, 투자은행 Banker, 파견 직원 등 출신과 전문분야가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난 처음 Economy, Policy and Governance(줄여서 EPG) 부서에서 EBRD 정책사업 관련 지식과 경험 등을 관리하기 위한 임시 조직 안에서 영국인 보스와 한국인 보스를 도와 일했다. 그리고 2022년 4월 조직 개편 이후, Impact 부서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처음 국제기구에 파견된 나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혼자서 파악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이제야 편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처음 1년은 그냥 ‘바보’ 같았다.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끌어다 보스들이 원하는 일을 처리해주며 친분을 쌓았고, 화상회의에서 만난 사람들과 개별 Chat, Tea-time 기회를 가지며 틈틈이 나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갔다.
3년 차에 이르고 나서야 사무실, 시스템, 내 일, 동료들이 익숙해졌고 그동안 다져진 내 입지를 바탕으로 지식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게 됐다. 유럽지역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우리 원의 지급결제시스템 관련 지식 노하우 등을 전수하고 공유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결국 우리 원의 해외 지급결제 컨설팅 업무 성사에 기여할 수 있었다.

각 회원국 대표(이사)가 중요한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장소, ‘EBRD Board Room’이다. 각국의 국기 위 2층에 검정 유리로 된 부분은 통역 부스인데 6개 국어로 동시통역이 가능하다.

회의실 한편에는 마치 도서관에 책이 꽂혀 있는 것처럼 벽돌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벽돌들은 베를린 장벽 무너졌을 때 가져온 것으로, 배경을 알고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나라도 나중에 휴전선 철사를 끊어 어딘가에 장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2022년 봄 어느 날 사무실 내 자리에서 야근하다 찍은 사진이다.

2022년 10월, EBRD 본사가 Liverpool Street 역 주변에서 Canary Wharf 역으로 이사했다. 새 사무실에서 본 경관인데, 사무실 벽면이 전부 통유리라 눈에 매우 잘 들어온다.

나의 3년을 몇 장의 사진과 글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Meaning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