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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에서 만난 대한민국 위스키의 기원


여러분은 ‘위스키’ 하면 어떤 나라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조니워커나 발렌타인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짐빔과 잭다니엘스의 고향인 미국? 야마자키와 히비키로 떠오르는 일본? 카발란으로 주목받는 대만?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남양주에 위치한 ‘기원 위스키 증류소’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나볼 수 있답니다!

글과 사진, 페이인포팀 박재민 계장

싱글몰트 위스키가 뭐길래?

위스키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싱글몰트’는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어요. 싱글몰트 위스키는 단 하나의 증류소에서, 100% 맥아(발아시킨 보리)만을 사용해 만들어진 위스키를 말해요. 조니워커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는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섞어서 맛의 균형을 맞추는 반면, 싱글몰트는 한 곳의 자연환경과 기술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그래서 지역의 물맛, 공기, 습도, 기후 같은 요소들이 위스키 맛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쳐요. 기원 위스키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자연과 정성이 녹아 있는 위스키라고 할 수 있겠죠.

기원 위스키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술은 이야기와 함께 마셔야 더 맛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기원 위스키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기원은 당화부터 숙성까지 전 과정을 국내에서 진행한 우리나라 첫 싱글몰트 위스키예요. ‘롯데칠성에서 만드는 스카치블루도 우리나라 위스키 아니야?’ 하실 수도 있는데, 스카치블루는 스코틀랜드에서 원액을 수입해서 국내에서 블렌딩과 병입만 한 제품이라, ‘국산 위스키’라고 보긴 어려워요. 기원 증류소는 2020년에 문을 열었고, 처음엔 ‘쓰리쏘사이어티즈’라는 이름이었어요. 재미교포 창업자,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 디스틸러, 그리고 한국 직원들이 함께 만든다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죠.

이후 ‘기원’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시작과 뿌리, 그리고 희망을 의미한다고 해요. 이름은 바뀌었지만, ‘쓰리쏘사이어티즈’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시그니처 라인 위스키로 호랑이(한국), 유니콘(스코틀랜드), 독수리(미국)를 선보이고 있거든요.

기원증류소 도정한 대표는 우리나라에 싱글몰트 위스키가 없는 것과 취하려고만 하는 한국의 술문화에 불만을 가져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대요. ‘핸드앤몰트’라는 수제맥주 회사를 운영하다 AB인베브에 매각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스키 사업을 준비했고 스코틀랜드 글렌리벳 증류소와 일본 닛카위스키 증류소에서 일했던 앤드류 샌드를 마스터 디스틸러로 초빙했어요. 앤드류는 한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제안에 꽂혀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해요.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두 사람, 정말 멋지지 않나요?

기원 시그니처 라인업 위스키 3종

기원 위스키 증류소, 어떻게 가나요?

‘기원 위스키 익스피리언스’라는 이름의 투어는 네이버 예약으로만 신청할 수 있어요. 매달 운영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기원 위스키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지도로 먼저 확인하는 게 좋아요. 꽤나 인기가 많기 때문에 2~3주 전에는 예약하셔야 해요. 투어비는 1인당 4만 원이지만 기념품과 시음이 포함되어 있어서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어요.

증류소는 남양주시 화도읍에 있어요. 자가용으로 가면 편하지만, 시음을 생각하면 대중교통이 안전하겠죠? 저는 경춘선 마석역에서 택시를 탔어요. 버스도 있긴 한데 배차 간격이 길어서 추천하긴 어렵더라고요.

증류소에 도착하면 오크통들이 줄지어 반겨줘요. 입구에 놓인 오크통은 2020년 기원 위스키가 시작될 때부터 숙성한 통이에요.

증류소 입구에 비치된
2020년산 오크통
네이버 지도 캡처, 배차간격이 2시간!
숙성고 앞에 쌓인 오크통
증류소 입구

이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오크통의 깊고 묵직한 향이 비냄새를 뚫고 코를 가득 채웠어요.

증류소 투어, 함께 따라가볼까요?

투어는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위스키 생산과정을 차례대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입장하면 기념품부터 챙겨주는데요. 기원 로고가 새겨진 예쁜 글렌캐런 잔과 목걸이를 주는데, 이 잔으로 투어 중 시음을 하게 됩니다. 차를 끌고 오셨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분은 바이알병에 담아갈 수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1. 1. 당화와 분쇄의 마법
    위스키 만들기의 시작은 당화예요. 맥아가 지닌 당을 뽑아내는 과정인데요. 당을 잘 뽑아내려면 맥아를 건조하고 분쇄해야해요. 분쇄된 맥아에 뜨거운 물을 넣으면 맥즙이 만들어져요. 이 맥즙은 진하고 달콤한 보리차 같은 맛이 난다고 해요. 기원에서는 맥아의 90%를 영국에서 수입하고, 나머지 10%는 국내산 보리를 사용한대요.

    그중 일부는 가평에서 직접 농사지은 보리라고 하니, 진짜 한국적인 위스키를 만들려는 노력이 느껴졌어요. 기원에서 쓰는 맥아를 직접 맛볼 수 있었는데, 달콤하고 고소해서 술안주로도 딱일 것 같았어요!
    시식용 몰트
    영국에서 수입한 몰트
기념품으로 받은 글랜캐런잔
  1. 2. 발효의 시간

    다음은 발효 과정입니다. 당화된 맥즙에 효모를 넣으면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죠. 이렇게 만들어진 술을 ‘워시’라고 부르는데, 기원에서는 72~120시간 정도 발효한다고 해요. 보통의 증류소보다 2~3배 긴 시간이죠. 운 좋게도 제가 간 날엔 발효 중인 워시를 직접 보고 맛 볼 수 있었어요.

    가이드님 말씀으로는, 맛이 “맥주와 막걸리 사이 어딘가”라고 하셨는데, 예전에 마셔본 보리 누룩으로 만든 막걸리와 비슷한 향과 맛이 났어요.

    워시를 담은 모습

    발효조에서 워시를 뜨는 모습과 발효조 내부

  2. 3. 증류의 예술

    다음은 워시를 증류해 원주를 뽑아내는 단계예요. 키세스 초콜릿처럼 생긴 증류기로 1차, 2차 증류를 해요. 증류기 모양이 어떠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대요. 기원의 증류기는 균형 잡힌 바디감과 꽃, 과일 향을 내도록 디자인 됐대요. 실제로 시음해본 스피릿에서 향긋한 꽃향기와 알싸한 스파이시함이 느껴졌어요! 기원이 추구하는 맛이 한국적인 스파이시함. 특히나, 고추장 페이스트와 같은 스파이시함이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정말 알맞게 원주의 맛이 뽑힌 것 같았어요.

    기원의 증류기
    기원 마스터 디스틸러 샌즈의 노트
    지게미 파이프와 농장 트럭

    재미있는 건 증류 후 남은 찌꺼기(지게미)가 영양만점이라 근처 농장에서 사료로 가져간대요. 사진은 증류소 옆에 농장 트럭이 주차된 모습인데요. 증류기와 연결된 파이프를 따라 지게미가 트럭에 떨어진다고 해요. 지게미를 가져간 농장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가끔 고기를 선물한다니, 이런 상생 너무 좋지 않나요?

  3. 4. 숙성의 기다림

    증류소에서 나와 숙성고로 이동했어요. 기원은 주변 공장들보다 높은 곳에 자리해 북한강 상류의 깨끗한 물을 쓸 수 있답니다. 현재 6개의 숙성고가 있지만, 투어에서는 1번 숙성고만 공개돼요.

    숙성고에 들어서자 오크향이 훅! 밀려왔어요. 이곳에는 스피릿 저장통과 다양한 오크통들로 가득했죠.

    6번까지 늘어난 숙성고

    오크통이 가득한 숙성고 내부

    증류소에서 파이프로 연결된 스피릿이 저장통에 모이고, 이걸 오크통에 주유건으로 채워 넣는답니다.

    기원에서는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해요. 전통적인 버번, 셰리 캐스크는 물론이고, 복분자주나 일엽편주를 담았던 통, 우리나라 참나무로 만든 통도 있어요. 오크통뿐만 아니라 전통방식인 옹기에도 숙성하고 있는 스피릿도 있고요. 한국적인 위스키, 술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거죠.

    주유건으로 스피릿을 통합하는 모습
    한국 참나무 오크통, 번호도 한글!
    옹기 숙성중인 스피릿
    숙성 중인 오크통
    숙성고 기념샷!

    이날 시음으로는 특별히 2020년에 100번째로 채운 오크통의 원액(Cask Strength, 55%)을 맛볼 수 있었는데요, 바닐라 향과 달콤한 피니시가 인상 깊었어요. 이런 CS위스키가 정식 출시되면 정말 인기가 많을 것 같았어요.

    참고로 이 오크통은 개인도 구매할 수 있대요. 200L 배럴 하나에 약 3천만 원···.

    다이나믹듀오 최자님이 친구들과 구매한 오크통, 세종스포츠정형외과 사장님이 직원복지를 위해 구매한 통도 볼 수 있었는데요. 로또 당첨이 된다면 저도 하나쯤···?

    오크통에서 바로 뽑은 신선한 위스키

    최자님 소유 오크통
    세종정형외과 오크통

시음과 쇼핑 타임!

투어의 마지막은 시음 시간입니다. 인당 총 3잔을 시음할 수 있고, 원하는 경우 바이알병(병당 1,000원)에 담아갈 수도 있어요. 저는 여자친구와 함께 총 6잔을 시음했는데, 주량이 약해서 두 잔쯤 넘어가니 맛과 향의 디테일이 가물가물해지더라고요. 그치만 모두 맛있게 마셨습니다.

투어 참가자에게는 제품을 1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혜택도 있어요. 저는 평소 궁금했던 피트 위스키와 증류소 한정판 스피릿, 그리고 여자친구가 마음에 들어한 진까지 구매했어요. 양손 무겁게 돌아왔죠. 기념샷을 찍었는데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민망했습니다.

기원에서 출시한 위스키 라인업
벌개진 얼굴로 기념샷, *관우맨*

마무리하며!

집에 돌아와서 기원 위스키 병들을 나란히 세워봤어요. 아직 시그니처 라인은 모으지 못했지만, 하나씩 채워나가고 싶어요.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코리안 위스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었는데요. 직접 투어를 다녀오고나니 흥미를 넘어 애착으로 바뀐 것 같아요. 우리만의 맛과 향을 담은 기원이 세계적인 위스키로 성장해나가는 미래가 기대됩니다! 이제는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좋은 위스키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도 남양주에서 우리만의 향과 이야기를 담은 한국 위스키의 기원을 직접 만나보는 건 어떠세요?

기원 위스키 모음